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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보면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입니다. 서울시 가로수의 무려 4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을 보이는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거리를 아름답게 물들이지만 동시에 열매의 악취로 시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나무가 오랜 시간 동안 도시 가로수의 자리를 지켜온 데는 과학적이고 생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온 은행나무의 강인한 생존력과 도시 환경 적응력, 그리고 현대 과학이 찾아낸 해결책까지, 은행나무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비밀
은행나무 가로수의 비밀

2억 년을 견뎌낸 은행나무의 생존력

은행나무는 2억 7천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식물로, 대멸종을 여러 차례 견뎌낸 놀라운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은행나무 종, 은행나무속, 은행나무 목, 은행나무 강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독특한 분류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침엽수도 아니고 활엽수도 아닌 그냥 은행나무로 분류됩니다. 재밌는 점은 은행나무의 두 개의 정자가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은행나무가 원시적인 식물과 발달한 종자식물 사이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생존력의 비밀은 은행나무의 강력한 방어 체계에 있습니다. 잎과 껍질에는 플라보노이드, 테르페노이드 같은 살충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해충이 쉽게 달라붙지 못합니다. 곰팡이와 세균성 질병에도 강한 저항력을 보이며, 기공이 깊숙이 들어가 있어 오염 물질이 침투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잎 표면의 두꺼운 큐티클 층은 중금속과 황산 가스가 흡착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나무 냄새에 불평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은행 열매가 떨어지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워가느라 바빴고, 한 달 정도의 냄새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앞 은행나무 길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은행을 주우러 와서 수위 아저씨들이 말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은행나무의 단점인 냄새가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나무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생활 여건에 따라 자연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도시 환경에 최적화된 은행나무의 도시 적응 능력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널리 사용되는 이유는 도시 환경에 대한 탁월한 적응력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가로수는 더위도 잘 버티고 추위도 잘 버텨야 합니다. 은행나무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며, 병충해에도 강하고 빠르게 잘 자라며 가격도 저렴합니다. 게다가 자생종이기 때문에 외래종을 선호하지 않는 우리나라 정서에도 잘 맞습니다. 초록빛일 때도 아름답고 가을에 노란색으로 물들었을 때도 예쁘다는 미적 장점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도심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은행나무의 강점이 더욱 부각됩니다. 도시에는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매연이 많고, 겨울철 제설작업으로 염분이 많이 뿌려지며, 여름에는 열섬 현상으로 온도가 매우 높아집니다. 은행나무는 이 모든 조건에 강한 내성을 보입니다. 세포의 염분 조절 능력이 뛰어나고, 두꺼운 뿌리 조직 덕분에 염분에 의한 손상을 입어도 쉽게 회복합니다. 은행나무는 뿌리가 깊게 자라기 때문에 가뭄에도 지하수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으며, 도시 열섬 현상에도 잘 견딥니다. 심지어 방사능 저항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가로수들과 비교하면 은행나무의 장점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소나무는 예전에는 강했지만 솔잎혹파리와 소나무 재선충이라는 치명적인 병충해가 생겨 방제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듭니다. 매연과 염분에도 약해 도심 생존율이 낮습니다. 단풍나무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뭄과 열섬 현상에 약하며, 진딧물과 깍지벌레가 자주 발생해 약을 많이 뿌려야 하므로 유지비가 많이 듭니다. 메타세쿼이아는 성장이 빠르고 수형이 균형 잡혀 멋지지만, 뿌리가 얕게 넓게 퍼져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들어 올리는 문제를 일으키고, 꽃가루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작나무는 아름답지만 우리나라의 산성 토양과 건조에 약하고, 입마름병이 자주 발생해 수액 주사를 놓는 등 치료비가 많이 들며, 여름 더위와 도시 오염에도 약합니다.

현대 과학이 찾아낸 해결책, 수컷 선별 기술

은행나무의 유일한 문제점은 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의 악취입니다. 그렇다면 수컷 은행나무만 심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 식물이기 때문에 암컷과 수컷을 구분해서 수컷만 선별적으로 심으면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어린 나무나 묘목 단계에서는 암수 구분이 불가능합니다. 보통 짧아도 15년, 길게는 20년에서 30년이 지나 꽃이 피는 시기가 되어야만 비로소 암수를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림청의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린 나무일 때부터 암나무인지 수나무인지를 구분하는 기술입니다. 특정한 유전자 마커를 확인하면 그 나무가 암컷인지 수컷인지 판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술 덕분에 요즘에는 수컷 은행나무만 따로 키워서 묘목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는 수컷만 선별적으로 심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접목 기술을 통해서도 열매가 열리지 않도록 조절하는 방법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가보면 가로수의 9%가 은행나무인데, 가을에 가도 악취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맨해튼에서는 열매가 안 나는 은행나무만 심어 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과학 기술을 통해 같은 방식의 해결책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은행나무는 단순히 오래 살아남는 도시의 생존자가 아니라,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고 미세먼지를 잘 흡수하며 산소를 많이 내뿜는 순기능을 가진 나무입니다. 수명도 천 년까지 이를 정도로 길어 장기적으로 도시 녹지를 유지하는 데 이상적입니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과거에는 먹을 수 있는 은행 열매의 실용성이 중요했지만, 현대에는 악취와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은행나무는 2억 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온 살아있는 화석이자, 현대 도시를 지탱하는 생태적 보루입니다. 물론 시민의 생활 편의와 쾌적함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수컷 선별 기술을 통해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행나무는 단순히 냄새나는 가로수가 아니라,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BTnFo-Zv2X4